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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문모닝입니다!




최신 영화부터 옛날 옛적 영화까지

스포일러 듬뿍 담아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까지 담은

문모닝과 무비무비! (MOVIE!)


황금같은 연휴 다들 잘보내고 계신가요?

저는 푹 쉬면서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가족애가 듬뿍 느껴지는 영화

「국제시장」을 오랜만에 봤더니

가슴이 뭉클해져서

다른 분들과도 나누고 싶어 글을 올립니다!








국제시장(Ode to My Father, 2014)은 영문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가장 평범한 아버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를 볼 수 있는

대한민국의 험난한 현대사가 만들어낸

감동 스토리를 잘,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는데요,


영화 '국제시장'에서는

베이비부머 세대인 덕수(황정민)가 겪은

시련과 고난을 딛고 일어선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잘 녹아 있습니다.


'국제시장'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6·25 전쟁의 아픔 뿐 아니라 전쟁 이후

폐허가 된 대한민국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

그 험난한 과정을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인 듯 합니다.



60대 이상의 어르신들께는 아픈 기억이자 향수를,

젊은이와 청장년층에게는 어버이에 대한 감사를

새삼 느낄 수 있는 영화 '국제시장' 속으로 떠나볼까요?




이 영화의 시작은

6.25 전쟁으로 중공군이 밀려내려와

대대적인 철수작전이 펼쳐졌던 흥남철수에서부터 전개됩니다.



1. 1950년대, 흥남철수 중 동생의 손을 놓친 '덕수'


흥남철수 때 피난민 중 한 가족이었던

주인공 덕수가 막내동생 막순이의 손을 놓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아버지(정진영)가 막순이를 찾으러 내려가면서

이산가족이 되어버린 덕수.


아버지는 부산에 있는 '국제시장'의 '꽃분이네'에 가 있으라고 말을 남기고 배 밑으로 내려가고

덕수는 아버지가 올 때까지 가장이라는 책임감을 놓지 않고

피난지인 부산 국제시장에서 손에 잡히는 모든 일을 하며,

그렇게 살아가게 됩니다.

(영화의 무대인 부산 국제시장은 비극의 시작이자, 영화의 시작과 끝이며

굳센 의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아버지의 의지를 상징하는 장치라고 생각됩니다.)




여기에서부터 시작된 시대적 흐름에 따라

'덕수'의 인생고난, 역경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는 시대가 바뀔 때마다 글썽글썽,

같이 보던 분께서 감성돔이라고..)


국제시장의 매력 중 하나는

깨알같이 시대에서 나타나는 유명인들을 볼 수 있는데요

이 때 현대그룹의 신화를 만들어낸 '정주영' 회장이 등장합니다.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는 거야"








2. 1960년대, 폐허가 된 대한민국, 파독 광부가 된 덕수



공부를 잘했던 덕수의 동생은 서울대학교에 합격하게 되고,

덕수는 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고자 친구 달구(오달수)와 함께

파독 광부로 지원하게 됩니다.

당시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노력으로 대한민국 경제는 한단계 성장할 수 있었는데요,

(저 역시 겪어보지 못하고 글로만 배운터라..)





전쟁 후 폐허가 된 대한민국의 경제를 살려내고자

정부에서 추진했던 일 중 하나가

광부와 간호사 인력이 필요했던 독일에

한국의 젊은이들을 파견보내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우리 사회상을 잘 대변하는 사례라고 볼 수 있는 파독 광부, 간호사의 이야기는

1960년대 초, 2400만명의 대한민국 인구 중 250만명에 달하는 실업자들과

종업원 200명 이상의 기업이 50여 개에 불과한 대한민국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독일로 건너간

총 8300명의 광부와 1만3000명 가량의 간호사가(1970년대 말까지)

매년 5000만 달러에 달하는 외화를 고국으로 보내왔고

독일로 간 한국의 젊은이들은 타지의 고된 환경 속에서 독일인들에게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어

독일 정부가 한국에 경제건설을 위한 차관을 제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를 기반으로 대한민국 경제는 성장할 수 있었답니다.

즉 이들의 노력은 조국 산업화의 태동을 알리는 마중물이 되었다고 볼 수 있겠죠



그리고 영화 중 덕수는

이 곳에서 파독 간호사였던 영자(김윤진)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됩니다.


(함보른 광산이 무너져 덕수와 달구가 갇혔을 때,

동료 광부들이 곡괭이를 들고 철문을 박차고 들어가는 장면에

온통 검댕이 묻어 새카만 사람들이 눈만 똘망똘망한 그 장면에서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




더불어 한국에 돌아와서 꽃분이네에 있던 덕수와

연신 "언빌리버블, 판타스틱"을 외치던

'디자이너 앙드레김 선생님'이 만나게 되는 깨알같은 재미도 볼 수 있죠



3. 1970년대, 베트남 전쟁에 가게된 덕수



덕수의 꿈은 원래 선장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어렵게 해양대학교에 합격하게 되지만


이 영화에서 참 슬픈 부분이었던게,

'가장'은 먹고 싶은 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하고 싶은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여동생을 시집보내고, 가족의 삶의 터전이자

아버지가 찾아올 것이라고 아직 굳게 믿고 있는 '꽃분이네'를 지키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월남으로 떠납니다.




비록 참전 군인으로 간 것은 아니었지만

기술 근로자로 떠난 월남은 충분히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개인적인 추측으로 덕수와 달구가 소속된 것으로 나오는 회사 '대한상사'는

당시 용역, 운송업으로 크게 성장한 오늘날의 대한항공 운영사 '한진'그룹을 상징하는게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당시 파견 기술자의 70%가 한진상사, 경남통운, 현대건설, 한양건설, 공영건업 등 5개 업체 소속이었다고 하네요)


이 곳에서 갖은 죽을 고비를 넘긴 덕수에게

특히, 6·25 전쟁을 겪었던 그에게는

이 곳에서 전쟁을 겪는 사람들의 일이 남일 같지 않았을 것입니다.


결국 이 곳에서 고립된 피난민을 구하다가

다리를 다쳐, 한 쪽 다리를 절게 되지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생명의 은인을 만나게 되는데

전라도 사투리가 구수한 가수 '남진(정윤호)'씨죠,


"한국가서 발매할라고요, 이거 되겠지요잉~"



실제 가수 남진 씨는 해병대에 자원입대해서 월남전에 참전한 바 있다고 하는데요,

당시 미발표곡이었던 '님과 함께'를 달구에게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월남에 가기 전,

부산의 자갈치시장 구이집에서 만난 꼬마 '이만기'도 반가운 인물입니다.



나중에 명절에 한 곳에 모인 덕수 가족이

TV를 통해 이만기 선수가 천하장사가 되는 장면을 보고 있는 것으로

개연성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4. 1980년대, 이산가족 찾기에 나선 덕수



1980년대가 되어서 대한민국은 이산가족 찾기가 진행됩니다.

실제 6·25전쟁 33주년을 맞아 KBS에서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진행하게 되고

당시 여의도 광장에는 138일 동안 진행되는 생방송과 함께

잃어버린 가족들을 찾는 가슴아픈 진풍경이 연출되는 데요,




이 방송에서 덕수는

미국으로 입양된 막내동생 막순이를 찾게 됩니다.

너무도 어릴 적 입양되어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막순이는

덕수가 마지막으로 했던말

"여기 운동장 아니다. 놀러가는 거 아니다. 오라바이(오빠) 손 꽉 잡으라"는 말을 또박또박 되뇌이고

이렇게 수십 년 만에 덕수는 막내동생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막순이가 낳은 딸 역할을 맡은 배우가 I.O.I의 '전소미' 양이라고 하더군요

엄청 나중에 알았음..ㅎㅎㅎㅎㅎㅎㅎㅎ




그렇게 모진 풍파를 겪은 덕수는

아버지로써 살아왔지만 마지막에는

아들로 남는 장면,

(여기에선 거의 대성통곡)

이 장면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아버지가 이제는 못 찾아오시겠지"라며

70대가 된 덕수는 이제 '꽃분이네'를 내려놓고자 결심합니다.

아마도, 여태까지 덕수는 아버지를 계속 기다려왔음을 느낄 수 있죠




방안에서 문을 닫고 아버지의 옷을 껴안고

"힘들었다"며 슬피우는 덕수와

거실에서 즐겁게 웃으며 이야기하고 있는 가족들을 보며

참으로 치열하게 지금을 일궈낸 아버지 세대의 아픔이 대조적으로 잘 연출되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



분명 우리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고 어머니는 아니었을텐데라는 생각을

이 영화를 보며 느꼈습니다.

분명 따뜻한 어머니의 품이 그립고, 힘들 때는 기대고 싶은 아버지의 등이 필요한

그런 아이고, 사람이었을텐데..




어느 누구에게도 '희생'이 당연한 삶이란 없을 겁니다.

지금의 우리가 뭘 먹을지, 뭘 입을지 하는 고민은

우리의 아버지 세대와 할아버지 세대에서는 다른 종류의 고민이었을 것인데

이런 윗 세대에서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고 힘든 시절과 역경을 겪어 오신

당신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느껴집니다.



이런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우리의 어르신들께

"감사합니다" 한마디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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